뿔이 끼었다 — 대장괘 상육(上六)으로 읽는 이란 전쟁과 한국의 선택
2025년 여름, 인류는 기묘한 데자뷔를 경험했습니다. 전혀 다른 두 세계에서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이름의 ‘방패’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 체계의 명칭을 기존의 ‘아이언 돔(Iron Dome)’에서 ‘골든 돔(Golden Dome)’으로 변경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쇠(Iron)로는 부족하니, 영원히 녹슬지 않는 황금(Gold)으로 미국을 성역화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불과 6주 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그룹 헌트릭스는 ‘골든(Golden)’이라는 곡을 발표했습니다. 악귀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절대 방어막 ‘골든 혼문’을 완성하겠다는 이 노래는 빌보드 1위를 휩쓸었고, 전 세계 청소년들은 주문처럼 떼창했습니다.
"우리는 황금이 될 거야, 영원히 깨지지 않아(Unbreakable forever)."
정치와 대중문화, 미사일과 K-팝. 이 이질적인 두 영역이 2025년이라는 시공간에서 ‘황금 돔’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겹쳐진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요?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라면 이를 ‘동시성(Synchronicity)’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인과관계는 없지만, 시대의 무의식이 하나의 거대한 원형(Archetype)을 갈구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지금 인류는 지독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 기후 재앙, 바이러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포. 이 혼란(Chaos)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싶은 욕망은 하늘을 완벽하게 덮는 ‘지붕’을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흠결 없는 ‘황금’으로 말입니다.
트럼프의 골든 돔이나 헌트릭스의 골든 혼문이나, 본질은 같습니다. 외부의 위협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나만의 안전한 요람으로 회귀하고픈 ‘퇴행적 유토피아’의 발현입니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눈으로 보면 이는 서글픈 코미디입니다. 실제로는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함에도, 우리는 ‘골든 돔’이라는 화려한 시뮬라시옹(가짜 이미지)을 소비하며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전쟁은 게임이 되었고, 안보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위태로움을 직시하는 대신, 황금빛 환각제를 처방받은 셈입니다.
💡 에디터의 코멘트: '골든 돔'이 가져올 구체적인 미래가 궁금하신가요? 지난 칼럼 [[미래 전망] '골든 돔'의 그림자: 우리는 안전한 '소작농'이 되기로 했나]에서 이 시스템이 바꿀 세계 질서와 우리의 운명을 확인해 보세요. (함께 읽으면 통찰이 두 배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가상의 서사가 보여준 결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영화 속 헌트릭스는 끝내 ‘골든 혼문’의 완성을 거부합니다. 순도 100%의 황금 방어막을 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결점과 수치심을 모두 도려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불완전한 자신들을 긍정하며 알록달록한 ‘무지개 혼문(Rainbow Honmoon)’을 선택합니다. 완벽한 차단이 아니라, 포용과 공존이 진정한 구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대중문화는 ‘황금’의 강박을 버리고 ‘무지개’로 나아갔지만, 현실의 정치는 여전히 ‘황금’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미국은 그린란드를 압박하고 동맹을 줄 세우며,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하려 폭주 중입니다.
"우리의 결점과 두려움은 절대 보여선 안 돼."
영화 속 대사처럼 강박이 국가 전략이 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황금은 너무 무르거나, 혹은 너무 차갑습니니다. 불순물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필연적으로 내부의 균열을 부르고, 외부와의 단절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기술과 자본으로 쌓아 올린 ‘황금 돔’ 안에 갇혀 고립될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손을 잡는 ‘무지개’의 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노래 ‘골든’의 가사는 "영원히 깨지지 않아"라고 외치지만, 역사는 증명합니다. 깨지지 않는 돔은 없습니다. 오직 유연하게 열려 있는 마음만이 부러지지 않을 뿐입니다.
허구(Fiction)는 이미 답을 찾았습니다. 이제 현실(Fact)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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