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이 끼었다 — 대장괘 상육(上六)으로 읽는 이란 전쟁과 한국의 선택
살을 에는 듯한 한파가 창문을 거세게 두드립니다.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파고드는 바람 끝이 매서워, 문득 저 북쪽 끝 동토(凍土)의 땅, 그린란드를 떠올립니다.
2026년의 그린란드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고요한 ‘얼음의 땅’이 아닙니다. 순백의 빙하 위로는 강대국들의 욕망이 검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졌습니다. AI와 데이터 센터를 돌릴 희토류를 찾아 헤매는 다국적 기업들, 전략적 요충지를 선점하려는 군사적 움직임들이 그 차가운 땅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수만 년의 침묵을 지켜온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은 기후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운(戰雲)의 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를 마주할 때, 우리 마음은 자꾸만 위축됩니다. 거대한 국제 정세의 파도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미래는 불투명한 안개 속에 갇힌 듯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옛 선인들이 말한 ‘관물(觀物)’의 지혜입니다. 관물이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나의 불안한 감정이나 욕망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응시하는 눈입니다.
우리가 뉴스에 일희일비하며 두려워할 때, 관물의 눈은 그 이면을 봅니다. 소란스러운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묵묵히 흘러가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보는 담대함, 그것이 바로 관물입니다.
💡 에디터의 코멘트: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또 다른 방법은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지난 칼럼 [[회복탄력성]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당신에게: 진짜 회복을 위한 '숨쉬기' 철학]에서 소개한 정이천의 호흡법과 함께 읽으시면, 내면을 단단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차분해졌다면, 이제 내면을 단단히 할 차례입니다. 주역은 이를 ‘양강중정(陽剛中正)’이라 했습니다.
양강(陽剛): 어떤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굳센 기운
중정(中正):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바른 태도
바깥세상이 춥고 어지러울수록, 우리 마음속에는 결코 얼어붙지 않는 난로가 하나 있어야 합니다. 외부의 환란에 휩쓸려 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단단한 심지를 세우고 따뜻한 긍정의 빛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갖춰야 할 품격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낡은 노트 속에 적어두었던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曠野)>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일제 강점기라는 가장 혹독한 겨울, 시인은 절망 대신 ‘씨앗’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눈’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고난이었지만, 그는 그 차가운 눈 속에서도 아득한 ‘매화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올 봄을 위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보여준 양강중정의 기상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2026년 역시 또 다른 의미의 광야입니다.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시대의 경고음처럼 들려오는 밤입니다.
눈보라가 치면 치는 대로, 우리는 각자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잃지 않는 평정심,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맡은 자리에서의 성실함이 바로 우리가 심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입니다.
지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저 북쪽 그린란드에도, 여기 우리의 창밖에도. 하지만 겨울이 깊다는 것은 봄이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차가울수록, 당신의 내면에 깃든 ‘강철 같은 무지개’는 더욱 선명하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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